나는 사실 대학원에 대한 생각이 딱히 없었다.
용돈벌이로 학부생 때 늘 어시스트했던 수업이 있었는데, 2년 동안 쭉 같은 교수님과 일을 하다가 딱 한번, 졸업 바로 직전 학기 때 다른 교수님과 일을 하게 되었다. 그 전의 교수님은 렉처만 하시는 분이셔서, 딱히 대학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도 없었고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더더욱 없었었다. 그리고 새로 만난 교수님은 다른 학교의 테뉴어 트랙 페클티였는데, 학기가 끝나고 갑자기 본인 연구실에서 박사학위를 시작할 생각이 없냐는 제의를 주셨다.
당시 코시국으로 GRE도 필요가 없었고, why not이라는 생각에 알았다고 하고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해서 대학원 지원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교수님의 성격도 정말 좋은 걸 알았기 때문에 대학원에 대한 무서움 하나 없었다.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한 지 1년 반이 지난 지금,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할까?
일단, 내 지도교수님의 성격은 정말 좋다. 배려도 많이 해주시고, 학생들에게 떠넘기는 일도 없고 (오히려 본인이 너무 많은 일을 해서 내가 미안할 때가 많다), 연구실 환경도 너무 좋다. 하지만, 교수님의 전문분야와 내가 하고 있는 연구주제가 너무 맞지 않는다. 1학년 초, 교수님께서 세 가지의 연구주제를 선택지로 주셨다. 그리고 그중에서 내가 고른 분야는... 교수님이 전혀 모르는 분야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교수님이 어떤 심정으로 그 연구주제를 선택지로 주셨을까?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래도 같이 공부하면서 해나가면 되겠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내가 생각하지 못한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연구실의 연구방식(?)이 다른 연구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보통 다른 연구실은 hierarchy가 있다. 예를 들어, 연구실의 시니어와 주니어 한 두 명이 팀이 되어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던지 말이다.
그런데 우리 연구실 같은 경우 박사과정 학생 1인당 각자 개인의 프로젝트를 '단독'으로 진행을 한다. 운이 좋아서 인더스트리에 있는 collaborator를 만나 둘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도 있지만, 학생 둘이 콜랍을 하는 건 왜인지 모르겠지만 교수님께서 허용을 안 하고 있다.
각자 본인의 프로젝트를 단독으로 진행했을 때 가장 큰 문제점은, 프로젝트당 사이클이 너무 길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있는 분야는 다른 CS 분야에 비해 이미 사이클이 길다. 그런데 프로젝트를 혼자 이끌어야 한다는 건, 그 사이클이 더 길어진다는 걸 뜻한다. 게다가 교수님의 전문분야와 프로젝트 주제가 같지 않다면, 교수님이 주실 수 있는 어드바이스는 전혀 없을 수도 있고 혹은 제너럴 한 것이 다이기 때문에, 혼자서 장애물들을 해처 나가야 하고, 혹시라도 내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 때 누구 하나 스탑해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고른 분야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교수님이 전혀 모르는 분야였고, 교수님께서 결이 모두 다른 7개의 프로젝트를 케어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생각한 "같이 공부하면서 해나가면 되겠지..."라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게다가 단순 calculation이 아닌, 수학적 이론이 들어가면 쳐다도 보기 싫어하셔서 더욱 어려움이 컸다.
박사과정 1년 차 때는 교수님과 분야가 안 맞아도 푸시하시도 않으시고, 아이디어나 내가 생각하는 걸 부담 없이 이야기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는데, 이제 2년 차가 되니 지도교수님과의 분야/관심사가 어느 정도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마음가짐...
대학원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가 우연한 기회로 시작을 해서였을까? 절박함이나 간절함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지난 일 년 반을 돌아보면, 열심히 한 적이 별로 없다.
부끄럽지만 정말... 시간투자를 별로 안 했다. 코스웤 듣는 것도 그냥 최소한의 시간만 투자했고, 연구를 위한 공부도 하루에 한두 시간밖에 안 한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의 내 마음가짐이 정말 부끄럽다.
이미 지나간 것들은 어쩔 수 없으니
앞으로라도 열심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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